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게 재밌다. 그저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조차도 너무 재밌다. 하물며 화려한 색채와 볼거리가 있는 12화의 웹툰을 보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네팔의 문화이자 전설의 상징인 쿠마리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 '시타를 위하여'를 시험 전날 보았더니 재미가 백 배다.
쿠마리는 네팔의 여신 탈레주의 화신이다. 3~5세의 여자아이 중 선발되어 살아있는 신으로 받들어진다. 가족들은 헌금을 받아 부유해지고 본인은 섬김을 받는다. 왕조차 그의 앞에서 무릎 꿇고 존대하며 축복을 기도한다.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을 수 있다. 첫째로, 걸어 다녀서는 안 된다. 신의 몸은 성스럽기에 그 발이 닿은 땅은 부정을 탄다. 쿠마리는 가마에 태워지거나 남에게 안겨서 이동한다. 둘째로, 감정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신에게는 감정이 없다. 쿠마리가 웃거나 우는 것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상징한다. 셋째로, 사원 안에 격리된다. 신은 사사로이 행차하지 않는다. 쿠마리는 축제 기간 또는 정해진 날에만 외부로 나가며 공연한 대화를 하지도 못한다.
신으로 숭배받는 쿠마리의 소망은 무얼까. 만나보지 못하니 다만 상상할 뿐이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걷고 뛰어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울거나 웃으며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을지는 않을까?
인간은 신을 한계 짓는다. 신의 속성을 분류하고 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 규정된 속성을 벗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신의 이름을 붙여 해결한다. 신이 자꾸 늘어난다. 양태론이나 삼위일체론으로 풀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뭔가 늘어난다. 특히, 일본의 신토가 그렇다
예를 들자면, 야훼는 완전하고 선하다는 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는 자연에 존재하는 불완전함과 악함을 설명할 수 없다. 악함을 포기하면 완전하지 못한 신이며, 완전함을 포기하면 때론 선하고 때론 악한 신이 된다. 자기 속성이 자기모순이다.
불완전함과 악한 속성을 분류하고 따로 떼어 데미우르고스라는 반(半)신에게 붓자. 아, 이러면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빠지니까 위험한가. 그렇다면 선함과 악함,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모두 가진 새로운 신을 상상한다. 그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결론이 아브락사스를 믿자는 건 아니고, 신은 신일 뿐이다는 말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 속성을 상상하고 규정하고 한계 짓지 말자. 우리 신은 제사를 싫어하니까 너랑 못놀아. 우리 신은 우상을 싫어하니까 네 신상을 좀 부숴야겠어. 우리 신은 성실하니까 너도 검소하고 일중독이도록 해. 우리 신은 동성애를 싫어하니까 걔들은 인간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말자. 좀 그러지 좀 말자.
그냥 진실한 눈으로 상대를 보고, 사랑하며 살자. 색안경 없이 좀 살자.
뱀발. 네 신, 내 신 따지지말고 사이즈 맞으면 함께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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