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토요일은 텅 빈 교실 같다.


새 학기를 맞기 위해 비어 있는 것이길 바라보지만

아무래도 모두 졸업해 버려서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What's your favorite movie?


죽은 시인의 사회죽은 시인의 사회, 출처: 네이버 영화



   아들의 질문


   옛날엔 극장에서 영화를 봤나요? 극장은 많이 있었나요? 가격은 얼마나 했나요? 자주 보러 가셨나요? 저는 주로 컴퓨터에서 영화를 봅니다. 좋아하는 영화들은 여러 가지인데, <과속스캔들>, <잠수종과 나비>, <아이엠샘>, <매트릭스>, <오페라의 유령> 같은 것들이에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건 <죽은 시인의 사회>에요. 중학교 졸업할 즈음에 본 것 같은데, "끊임없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 책상 위에 서는 거야"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여러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정해진 길만 따르는 낙타 같은 삶은 슬프단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떤 영화가 가장 좋았나요? 그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아버지의 답


   옛날...! 그러니까 일천구백 60년대에는 연산역 광장에서 야외스크린 쳐놓고 낮에 지프차에 확성기 달고 이윤복 어린이의 일기를 소재로 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상영한다고 많이들 구경 오시라고 "공짜지 머......" 저녁 먹고 친구들하고 같이 가서 구경했던 게 처음 접했던 영화였다. 흑백인데 무성은 아니었다. 영화 속의 사람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이 참 신기했지. 내용은 관심이 없고 그저 영화의 신기함에만 몰두했지.


   그리고 초딩2학년 그러니까 1965년 목조건물창고에서 가끔씩 영화상영을 했지 입장료가 있었는데 얼마였는지 몰라 왜냐하면 친구 만일이하고 개구멍 질을 해서 들어갔으니까. 몇 번은 아버지의 삼촌께서 돈은 내주셨고, 그래서 본 것이 총천연색 씨네마 스코프 <홍길동> 신영균이라는 배우가 주연, 그리고 <최후전선 백팔십리> 6.25동란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로 주연이 여러 명이었던거 같아 김희갑이라는 배우가 매우 웃겼던 기억이 난다. 기록영화로는 프로레스링의 김일, 복싱의 김기수 이런 것도 보았다. 아주 신났단다. 그때 TV가 없었다. 그런 게 있다고는 들었는데 실제로 본건 1969년도 아폴로 달착륙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50년 전 얘기를 하고 있었구나!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단체관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1970년대 군 소재지에는 극장이 두어 곳 정도는 있었지. 논산에는 논산극장과 군민관 두 군데가 상시 상영하고 있었지. 한 달에 한 번꼴로 단체관람이 싸게 아마 반값?(경제감각이 없어서 금액은 기억이 안 남)으로 그대신 다른 때 극장 가서 걸리면 유기정학 1주일에 쳐해졌단다. 아버지는 정학을 당한 적은 없다. 착해서 안 간 게 아니라 돈이 없어 못 간단다. ㅎㅎ. 중학교 때 기억나는 영화 외국영화 <천지창조>, 기록영화 <동물각하>, 서부영화 <최후의 7인> 한국영화는 <성웅 이순신>, <춘향전>을 보았던 기억이 나고 <동물각하>에서 거북이가 뒷다리로 마치 포크레인이 퍼내는 것처럼 모래를 파고 거기에 알 낳고 묻어두면 까만 새끼거북이 깨어나와 바다로 막 기어가는데 새(갈매기인지 독수리인지 모름)가 채가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열심히 기어가서 바다에 안기는 새끼거북도 꽤 있었던 거 같았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로 걸리면 정학! 한 달에 한 번은 단체 관람. 그런데 단체관람 날은 수업이 일찍 끝나지. 그러나 영화 보러 간 거보다 친구들과 짜장면 먹으러 중국음식점 간 게 더 많았다. 아카데미극장, 대전극장, 시민관이 개봉관이었지. 그래도 기억나는 영화는 <에덴의 동쪽>, <정무문>. 한국영화는 정소녀의 <이름 모를 소녀> 강제동원 관람영화도 있었다. 박태준 씨가 포항제철 건설하는 거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제목이 <해벽>인가? 가물가물해. 비바람 파도 속에 방파제 쌓는 장면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그런 영화도 보았단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1983년도 <사운드 오브 뮤직> 1984년도 <터미네이터>를 끝으로 극장을 잊고 살다가 연전에 아들과 같이 보았던 <국제시장>이 제일 좋았다.



   적고 싶은 것


   어릴 적에 TV나 비디오로 영화를 접할 수 있어서 처음 봤던 영화가 뭔지는 기억할 수 없다. <나홀로 집에>, <로보캅>, <배트맨>이나 <사탄의 인형>, <폴리스 스토리> 같은 영화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언제 봤는지가 기억나는 건 선생님이 학교에서 틀어줬던 <매트릭스>였다. 그때는 그저 때려 부수고 총 쏘고 누워서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 재밌었던 것 같다. 그런데 머리가 굵고 나서 다시 보니 액션 이외에도 소름 돋게 잘 만든 영화였다.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 세계는 나중에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어린 애들에게 <매트릭스>를 보여준 선생님의 의도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뭘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지?


   영화관이란 곳을 가본 것은 좀 더 자란 뒤의 일이었다. 'CGV'나 '메가박스' 같은 전국적인 체인은 없었다. '주네스'니 '키노피아'니 하는 촌내음 나는 이름의 개별 멀티플렉스와 독립영화관이었는데, 그나마 쉽게 갈 일이 있진 않았다. 친구 생일 정도의 이벤트가 있어야 시내에서 맥도날드나 롯데리아를 먹고 영화관에 가고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다가 오는 사치를 부렸었다. 그즈음에 봤던 게 <살인의 추억>, <국화꽃 향기>,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왕의 남자> 같은 영화들이다. 그러고 보면 이때쯤 한국 영화가 꽤 재밌었고 천만 영화도 나오기 시작했었다.


   아버지의 때와 달리 나는 영화를 본다고 정학을 당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딱히 더 많은 영화를 본 것 같지는 않다. 남들이 재밌다고 하는 영화만 졸래졸래 따라가서 보고 나왔기 때문인가?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그런가?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자유로워진 사회가 됐다. 그런데 그 안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추억 돋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작 인상 깊었던 영화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국제시장>인걸로 하자. 사실 <국제시장>의 내용이 썩 훌륭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가족과 함께 봤으니 좋은 영화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영화를 보았는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그건 영화감독이 만들어줄 수 없는 오롯이 내 몫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까. 이번 여름엔 아버지가 좋아하게 될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아, <죽은 시인의 사회>가 8월에 재개봉한다고 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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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맨 처음 나를 품에 안았을 때  (9) 2016.06.02

정준하 무한도전무한도전 릴레이툰, 출처: OSEN



   정준하는 릴레이툰 특집을 통해 세인트버나드가 되었다. 릴레이툰 특집에선 무한도전 멤버들과 현직 웹툰작가들이 팀을 이루어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한다. 2년마다 가수들과 팀을 이루는 가요제 느낌이 들지만, 음악과는 다른 그림의 매력을 볼 수 있다. 정준하와 팀을 이룬 웹툰 작가 가스파드는 그를 똑 닮은 개로 그려주었다.


   플란다스의 개 ‘파트라슈’가 세인트버나드 종이다. 구조견이나 안내견으로 훈련받을 정도로 강하고 지능이 좋지만, 축 늘어진 눈과 귀 때문에 왠지 억울한 인상이다. 덩치는 크지만 속은 여리고 늘 억울한 놀림을 받는 정준하는 세인트버나드를 많이 닮았다. 특징을 잘 잡았다.


선천적 얼간이들선천적 얼간이들 e64, 출처: 네이버 웹툰



   가스파드는 이미 정준하를 세인트버나드로 그렸던 적이 있다. ‘선천적 얼간이들’ 64화에서 빙어를 야무지게 잡숫는 준하 형을 만날 수 있다. 준하 형이 오호츠크 해에 있었던 3년 전부터 가스파드는 그를 그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작가는 사람을 동물로 표현하는데 뛰어나다.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은 그의 일상 우화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가스파드(거북이)와 삐에르(닭), 산티아고(불테리어), 로이드(산갈치) 같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모험적이고 황당한 그의 일상도 재밌지만, 동물로 그려진 친구들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캐릭터에 대한 배경과 에피소드를 설명한 나무위키를 먼저 봐도 좋을 것이다.


https://namu.wiki/w/%EC%84%A0%EC%B2%9C%EC%A0%81%20%EC%96%BC%EA%B0%84%EC%9D%B4%EB%93%A4/%EB%93%B1%EC%9E%A5%EC%9D%B8%EB%AC%BC


   사람을 동물에 빗대는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물의 특징과 이미지는 사람들 생각 속에 이미 구성되어 있다. 그 공감대를 활용하면 특징과 이미지가 잘 연결되어 읽기 쉬운 글을 쓸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동물농장은 그런 방식으로 동물들을 의인화한 소설이다. 돼지와 말, 당나귀와 개, 닭과 양 등의 동물들은 ‘매너(Manor)’ 농장에 살고 있다. 이름처럼 유럽의 영지(장원)를 상징하는 곳이다. 오웰 선생은 이 동물들의 농장 속에서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우화로 빗댄다. 등장하는 동물들도 그 시대의 계급이나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다.


   소설은 늙은 돼지 메이저 영감의 연설로 시작한다. 카를 마르크스를 상징하는 이 영감은 농장의 부조리와 고통이 농장주인 인간, 존스의 착취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영감의 말을 들은 동물들은 농장주를 쫓아내고 모두가 평등한 혁명 농장을 만든다.


   인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들은 알도 낳지 못하고 젖도 생산하지도 않고 힘이 없어 쟁기도 못 끌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빠르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든 동물들의 주인입니다. 그들은 동물에게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먹이만 주면서 나머지는 모두 자신들이 챙깁니다. 우리의 노동으로 땅을 갈고 우리의 배설물이 그 땅을 기름지게 하지만 막상 우리는 헐벗은 가죽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물농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동물은 욕심 많은 돼지, 나폴레옹이다. 그는 같은 돼지인 스노우볼과 함께 혁명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탐욕에 눈멀어 정적인 스노우볼을 축출하고 농장의 동물들을 착취하는 독재자가 되어간다. 맛있는 우유와 사과를 독점하고 인간이 사용하던 안채와 침대를 차지하며 점점 인간처럼 변한다. 심복인 개와 양을 이용해 농장의 동물들을 협박하고 스스로 신격화하여 농장을 통제한다.


   ‘북괴’를 무찌르는 만화 ‘똘이 장군’에서는 김일성을 붉은 돼지로 묘사한다. 동물농장의 나폴레옹을 모티브로 삼았겠지만, 나폴레옹은 꼭 공산주의 독재자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탐욕으로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많은 권력자를 상징하는 것 같다. 돼지의 욕심을 가진 권력자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 않은가.


똘이장군붉은 돼지, 똘이장군, 출처: 네이버 영화



   성실하고 착한 말, 복서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동물은 복서이다. 복서는 성실하고 착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가장 마음이 간다. 복서는 문제를 만나면 자신의 신념으로 문제에 맞선다. 그는 ‘내가 좀 더 열심히 일한다’와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라는 두 가지 신념을 지녔다. 복서는 글을 배울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선동할 만큼 말솜씨가 좋지도 않다. 다만 자신이 가진 힘과 정신으로 농장의 잡다한 일을 성실하게 도맡아 처리한다.


   성실하고 착한 복서는 나폴레옹의 좋은 영양분이다. 혁명에 벌일 때도, 인간들과 전투를 벌일 때도, 풍차를 만들기 위해 고된 노동을 감당할 때도 그는 용감히 먼저 나섰다. 나폴레옹이 동물농장의 7계명을 고칠 때, 다른 돼지들과 닭들을 숙청할 때, 인간과 교류하며 동물들을 착취할 때에도 그는 지도자 동무를 믿고 묵묵히 따랐다. 남들보다 30분, 45분,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며 일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2급 명예훈장과 병들고 노쇠한 몸뿐이었다. 복서는 은퇴를 앞둔 어느 날, “말 도살 및 아교 제조”라는 의심스러운 글씨가 쓰여있는 마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길이라 믿으며 농장을 떠난다.


   복서는 모든 동물들의 경탄의 대상이었다. 복서는 존스 시대에도 훌륭한 일꾼이었지만 이제는 말 세 마리의 몫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농장의 모든 일이 그의 힘센 두 어깨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도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는 가장 어려운 일이 있는 곳에서 항상 밀고 끌며 일을 했다. 또한, 그는 수탉 한 마리에게 부탁하여 아침에 다른 동물들보다 30분 일찍 자기를 깨워 주도록 했고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급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을 하였다. 무슨 문제가 생길 때나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내가 좀 더 열심히 일해야지!' 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는 그것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클로버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자주 충고를 했지만, 복서는 그녀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좀 더 일한다'와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는 두 개의 좌우명은 모든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복서는 남들보다 30분 일찍 깨워주던 것을 이제 45분 더 일찍 깨워달라고 수탉에게 다시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다지 많지 않은 여가시간에도 그는 혼자서 채석장으로 가 깨어진 돌을 한 무더기 모아 아무 도움 없이 풍차를 세우는 곳으로 끌어가곤 했다.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뭔가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게 틀림없어요. 내 생각에는 좀 더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침에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도록 하겠어요." 그러더니 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채석장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돌더미를 두 차례 분이나 풍차 공사장까지 있는 곳으로 나르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마구간으로 돌아갔다.



   복서가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복서는 수레를 끄는 말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곁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던 짐마차의 말이다. 오웰 선생은 아마 그 동물에게서 순종적이고 의무에 성실한 성질을 포착하지 않았을까.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시스템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좀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보며 복서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 같다.


   복서의 삶은 순박하고 불쌍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못나지 않았다. 나는 사실 그만큼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복서처럼 강한 신념을 갖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휩쓸려가는 삶을 산다. 신념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에도 게으른 사람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만큼은 정말 해낸 적이 없다. 그에게서 묵묵한 의지와 성실한 실천을 배우고 싶다. 그의 삶은 위대하다. 이렇게 대단한 삶을 살아낸 복서인데, 그 삶이 슬프고 비참한 것은 공평하지 않다.


   복서처럼 정직하고 성실한 이들이 아프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어떡해야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역시 내가 ‘좀 더 열심히’하는 수밖에 없나? 좀 더 열심히 우리 농장의 문제를 발견해야겠다. 우리 주변에 나폴레옹이, 거짓과 기만이 설 자리가 없도록 잘 살펴야겠다. 노새 클로버가 꿈꿨던 미래가, 누구도 비참하지 않은 미래가 이루어지는 날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 복서 같은 이들이 정말 잘 사는 날을 이루면 좋겠다.


   그녀가 나름대로 그린 미래의 꿈은, 모든 동물들이 배고픔과 채찍으로부터 해방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각자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고, 마치 메이저 영감의 연설이 있던 날 밤 자신의 앞다리로 오리 새끼들을 감싸 준 것과 같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주는 그러한 동물들의 사회였던 것이다. 



동물농장
국내도서
저자 : 조지 오웰(George Orwell) / 김기혁역
출판 : 삼성출판사 2015.02.10
상세보기




  <동주>는 흑백영화다. 컬러풀한 세상에 흑백영화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흑백의 영상을 의식할 수 없었다.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색깔이 있고 없고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은 왜 <동주>를 흑백으로 연출했을까? 어느 날 세상이 갑자기 흑백으로 변해버린다면 어떨까?


  영화 <플레전트빌>은 흑백의 세상을 상상했다. 데이빗과 제니퍼는 어느 날, TV 속 흑백 프로그램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흑백 세상에 색깔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그들로 인해 일상의 질서가 반복되는 ‘플레전트빌’에 욕망과 미움, 분노, 자유의 혼란이 벌어진다. 흑백이 정상인 세상에서는 색깔을 갖게 된 사람이 비정상이고 위험하다. 그래서 흑백 사람들은 색깔 사람들을 재판장에 세운다.


플레전트빌플레전트빌, 1998, 출처: 네이버영화


  동주는 일제의 시대에 한국인의 색깔을 갖고 싶어 하는 위험한 사람이다. 그도 역시 재판에 선다. “한민족에 대한 애착으로 반제국주의 행위,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는다. 대동아 공영의 기치를 건 영광의 시대에서 불온한 사상으로 망동한 비정상인이란 선고다. ‘히라누마 도쥬’의 정상적인 삶을 거부하고 ‘윤동주'의 삶을 선택한 죄의 대가는 사회로부터의 추방, 죽음이다.


  “모두가 미친 세상에서 잘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가장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한데, 비정상인 세상에 혼자 정상으로 살아가기도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자화상>에서 동주는 그 대답이 궁금해서 자꾸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왠지 현실보다는 정상 같은 우물 속 세상의 사나이를 보며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 흑백으로 끝나버린 <동주>는 슬프다. 하지만 그처럼 나도, 비정상인 삶을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이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맨 처음 나를 품에 안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What did you feel the first time you cradled me in your arms? 


라이온킹라이온킹, 디즈니, 1994



  아들의 질문

  그러고 보면 안타깝게도 내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나면 이상한 건가? 그래서 이것저것 궁금한 점도 많아요. 저는 어디서 몇 시에 태어났나요? 아버지는 그때 함께 계셨나요? 처음 본 제 모습은 어땠었나요? 그날 분위기는 어땠나요?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생각하면 라이온킹의 이 장면이 먼저 생각납니다. 혹시 아버지도 이렇게 저를 번쩍 안아 올리셨나요?


  아버지의 답

  네가 태어나는 본인 일인데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19OO년 O월 16일 14:24 [음력 O]날 성모병원에서 3kg짜리 남자아기가 태어났단다. 아주 심한 난산이어서 아빠는 너와 네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정작 그 시간에는 회사에.... 같이 못 한 게 지금 생각해도 죄인 같아!
심각한 상황도 있어서 수술동의서 작성도 하고 그랬지만 너가 태변을 먹고 황달기도 있고 해서 입원하였고 22일 박OO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고 25일 퇴원하여 더운 여름날 에어컨 없는 단간방 우리 집으로 네가 왔단다. 널 안아보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쁘기만 하더만.....!


  기록하고 싶은 것

  구유에 누워서 멀리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의 예물을 받은 탄생이나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 탄생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태변'에 '황달'이라니! 어쩌면 기억 못 해서 다행이다. 태변흡입증후군은 41주 이상 과숙아에게 흔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결국, 늦은 출산으로 생긴 일이란 뜻이다. 그때고 지금이고 느림으로 인해 고통받는 걸 보면 사람 참 일관되다.

  요즘은 출산 때 남편이 함께 있는 게 당연한 분위기지만, 옛날엔 출산으로 휴가 쓰기 어려웠다고 한다. 세상은 자꾸자꾸 변한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나중엔 달라지겠지. ‘다들 그렇게 하니까’보다는 조금 더 고민해 보도록 하자.

  대단하게 태어난 건 아닐지 모르지만, 어렵게 태어난 건 확실하다. 어렵게 만난 삶의 기회에 감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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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영화 이야기  (5) 2016.07.22


Original images: San Francisco by Anh Dinh, Nanjing in winter snow, 2008 by Emma Gawen, and Blade Runner's Johannesburg by Andrew Moore.Original images: Anh Dinh, Emma Gawen, and Andrew Moore.




 고흐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A 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은 고흐의 색감과 붓 터치를 알고리듬화 해서 사진을 변환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다. 이를 이용해서 샌프란시스코와 난징, 요하네스버그가 고흐의 그림처럼 변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그의 그림을 되살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될까? 언젠가는 그의 다른 그림과 편지, 혹은 생각까지도 복제해내고 싶지 않을까? 그게 이루어지는 날 고흐가 되살아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는 나처럼 생각하는 패턴을 가진 유기적인 집합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처럼 생각하는 정보 프로그램이 나타난다면 나의 존재는 위협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쓴 글들은 블로그에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이 문체와 어휘들을 사용하는 프로그램 정도는 곧 만들 수 있겠지. 나의 선호와 선택의 패턴들은 알게 모르게 네트워크에 데이터로 남는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의 위치정보, 내가 사 먹은 결제정보, 인터넷 구매목록들을 모아서 나를 복제하는 날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럼 나의 영혼이 복제된 걸까?


 생명공학 연구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오래 걸릴 거로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인체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인체 합성처럼. 만들어진 육체에 복제된 나의 영혼을 불어넣으면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죽은 사람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복구할 수 있을까? 새 육신을 입고 새로운 세상에서 부활한다는 게 혹시. 설마.


 겨우 모방한 고흐의 그림에서 시작한 것치고 너무 멀리까지 생각해봤다. 고흐의 그림이 주는 영감은 그가 죽고 난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160326 웨딩싱어즈용화: 형은 치열하잖아


 병재 형이 식스맨이 되길 바랐었다. 무한도전은 이미 성공한 포맷이고 기성세대가 되었다. 무한도전이 상징하는 성공한 세상에 도전하는 병재 형의 찌질이 캐릭터가 재밌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광희가 식스맨에서 보여준 임시완에 대한 시기 질투의 캐릭터로는 이야깃거리가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웬걸, 광희는 병재 형보다 노오력 스토리를 더 잘 보여주고 있다. 형들을 무서워하지만 의존하고 싶고, PD님과 댓글 반응이 두려운 소심함. 그러면서도 자기는 당당하니까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허세까지. "치열함"의 모습으로 매주 흥미로운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막내의 치열한 생존투쟁이 성공에 익숙해진 형들이나 제작진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어느새 도전하는 게 아닌, 도전해야 할 프로그램이 되어 버린 무한도전을 신선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치열함"만으로 광희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 랩 하는 정준하의 도전도 치열하다. 무도 멤버 모두에게 치열함은 기본이다. 광희에겐 황광희다운 또 다른 캐릭터가 필요하다. 누구에게 "황광희입니다"라고 말하면 딱 떠오를 수 있는 이미지와 카피가 절실하다. 그러고 보니 "도지사입니다"라는 캐릭터를 구축하신 분이 있었다. 캐릭터가 있으니 기억에 남네. 잘 살고 계시겠지?


 바둑에서 '미생'은 아직 살아있지 못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돌들의 집합을 말한다. 미생이 완생이 되기 위해선 완전한 두 집을 지어야한다. "치열함"으로 한 집을 짓고 있는 광희는 "황광희다움"으로 또다른 한 집을 지어야 한다. 아마 그것은 "무한도전스러움"도 "예능인스러움"도 아닌 참신하고 그다운 도전이 되겠지. 그의 도전이 성공하길 바란다. 응원한다 황광히! 잘하고 있다 황광히! 힘내라 황광히!


뱀발. 근데 나도 빨리 두 집을 지어야 하는데.



151226 무도공개수배151226 물 위를 달리는 광희


160123 행운의 편지160123 암벽을 오르는 광희 (형들 다 정준하네 갔는데...)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


 이것이냐, 저것이냐. 우리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생을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고 했을 것이다. 여기 한 기원전 인물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신께서 그를 시험하기 위해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신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아들을 살릴 것인가. 만약 아브라함의 상황에 선다면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이삭의 희생이삭의 희생, 렘브란트, 출처:wikimedia


 이삭의 운명은 칼을 쥔 아브라함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이 노인은 그의 유일한 소망과 더불어 거기에 섰다! 그러나 그는 불안한 듯이 좌우를 살펴보지 않았다. 그는 그의 기도로써 하늘에 호소하지 않았다. 그는 그를 시험한 분이 전능하신 분,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가장 중대한 희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 하느님께서 요구하실 때는 어떠한 희생도 지나치게 큰 것이라고는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 이리하여 그는 칼을 뽑았다.


 키르케고르 선생은 "나는 아브라함을 이해할 수가 없고, 다만 아브라함을 찬양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을 위해 자신의 부를 포기한다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둘 수 없는 일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임으로써 범죄자가 된다. 그것도 자기 아들을 죽이는 살인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윤리보다 중요한 것은 신의 명령이었다. 부조리한 불안 속에서 자신의 가치, 사랑과 보편적인 윤리성까지 포기한다. 키르케고르는 그것이 '신 앞에 선 단독자(혹은 개별자)'로서의 결정이었기에 찬양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두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윤리성을 신으로부터 분리해서 신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윤리와 신의 대결이라는 이원론적인 구도 속에서 신은 비윤리적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은 윤리를 포함한다. 오히려 윤리성은 신에게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유일신관이 아닐까? 신과 윤리를 분리할 수 있다면, 윤리는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두 번째 문제점은 신의 명령을 보편적으로 따라야 할 원리, 정답으로 상정하는 점이다. 윤리성을 넘어서는 아브라함의 결정을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믿음이며 방향으로 찬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작년 인도에서는 여신 '칼리'를 위해 4살 아이의 머리를 제물로 바친 일이 있었다. 파키스탄 카리치 지역에서는 자신의 아이 5명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가 있었다. 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자살 폭탄 테러를 벌이는 일은 굳이 꼽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만약 아브라함과 똑같은 상황으로 제 아들을 바친 이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나타난다면 기독교도는 그를 또 다른 믿음의 기사라고 칭송해야 하는가?



lone survivorLone Survivor, 2013



 인간이 삶 속에서 만나는 선택의 갈림길은 선과 선의 대결이며 동시에 악과 악의 대결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는 선과 따르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선 사이의 딜레마이며, 동시에 아들을 살해하는 악과 신을 배신하는 악 사이의 딜레마다. 이 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인간이 완전한 선에 도달할 수 없는 일종의 원죄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Lone Survivor>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05년 아프간 산악지대에 투입된 머피 대위와 네이버씰 대원들의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 준다. 대원들은 '레드윙 작전'을 위해 잠복 중 양치기 일행에게 발견된다. 이들이 탈레반과 연관있다면 대원들은 작전에 실패한다. 4명뿐인 소규모 부대가 민간인을 생포해 데리고 다닐 수도 없다. 논쟁 끝에 그들은 비무장 중인 양치기 일행을 풀어준다. 그러나 그 판단으로 인해 그들은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포위되고 그들을 구하러 온 치누크 헬기마저 추락하며 큰 인명피해를 입는다. 양치기 소년을 죽이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1969년 베트남 전쟁에서 25세의 해군 장교 밥 케리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메콩 삼각주에서의 작전 중 만난 민간인 마을에서 부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10여 명의 부녀자와 아이들을 사살한다. 부대원들은 작전을 마치고 안전하게 후퇴했으나, 이 사실이 2001년 폭로되어 그를 처벌하고 훈장을 박탈해야 한단 논란이 일었었다. 그는 베트콩과 연관 있을 수 있는 마을을 그냥 지나쳤어야 했을까? 어쩌면 머피 대위는 이 논란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어떤 정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정답을 선택할 수 없으며, 딜레마 속에서 결코 고결해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다만 신이 예비하신 어린 양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할 것임을 상징하는,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예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아들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희망을 품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 신 앞에 서는 것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도망치지 않고 내던져진 삶에 직면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신화적 상황일 뿐이야.' 혹은 '머피 대위가 속한 전쟁의 특수한 상황일 뿐이야.'라고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여 함께 고민할 때, 우리는 조금 더 희망에 가까워질 수 있다.



공포와 전율 반복 (키르케고르선집 4/ 양장)
국내도서
저자 : 쇠얀키르케고르 / 임춘갑역
출판 : 다산글방 20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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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인어공주, 출처: 예림당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Happily ever after.


 오랜 동화의 정석적인 결말은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고 그런 결말을 우리는 해피엔딩이라고 불러왔다. 불쌍한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이나 명예를 쟁취한 후에는 당연히도 오래오래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결말이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을 결과론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동화들은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아서 행복한 이야기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결과론적 인식의 뒷면에는 삶의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단 생각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 지 생각해 본다. 그로 인해 '결과가 좋으면 좋은 삶이다'와 '결과가 나쁘면 나쁜 삶이다'라는 두 가지 중요한 오류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 아닐까.



 '결과가 좋으면 좋은 삶이다'는 과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가 된다.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닌 것을 아니라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혹은 더 나아가서 좋은 결말을 맞기 위해서 파렴치한 삶을 살아가게 한다. 1905년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게 한 친일파 이완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가 천수를 누리다가 호사스런 장례식으로 삶을 마무리했다고 해서 그 삶이 좋은 삶이었다 말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나라를 팔아서라도 잘 먹고 잘살겠단 친구에겐, 그건 좋은 삶이 아니라고 설득해야만 한다.




김광석김광석, 출처: 딴지일보



 '결과가 나쁘면 나쁜 삶이다'는 의미 있게 살았지만 실패한 이들을 폄훼하는 논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가치와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어질 수 없도록 방해한다. 이런 인식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김광석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빈센트 반 고흐가 있다.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이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소개할라치면 자연스레 돌아오는 '그 사람 자살한 거 아니니?'라는 되물음이다.


 김광석을 슬픈 노래만 부르다 노랫말처럼 스러진 가수라고 평한다. 슬픔은 배척하고 외면해서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직면하고 노래했을 때,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것이 의미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헤밍웨이를 연이은 이혼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작가로 평한다면,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지만 결국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온 노인도 헛된 시도를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흐가 돈 안 되는 그림만 그리다가 스스로 가둔 광인으로 보인다면, 그가 그려온 무한한 것에 대한 경탄과 사랑, 그가 성취한 짙푸른 밤하늘의 인상 또한 하찮은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결과는 단지 마침표일 뿐인 것 같다. 죽음은 이야기를 끝내는 경계일 뿐, 삶에서 보여줘야 할 것은 하루하루 채워나가는 문장이다. 내일조차 보이지 않는 갈등과 불안 속이라도 오늘의 문장을 좀 더 아름답게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 인간의 본질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오늘의 선택이란 실존이 본질을 앞서고 그 선택을 충실하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다.


유한한 시간은 비본래적 존재의 공간을 남김없이 비운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은 내가 원하는 의미와 가치로 자유롭게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다시 열린다.



김광석과 철학하기
국내도서
저자 : 김광식
출판 : 김영사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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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 어느 날 우연히 들이닥칠 수 있다.

생각지도 않던 일에서 오오 하는 환호를 들을 수 있다.


좋아해서 잘하는 것인지, 잘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물고 물리는 관계이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선 누군가의 칭찬이 필요할 수 있다.

"넌 이거 잘해"라는 말로 인해 좋아하는 일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피드백 받아보는 것이다.

교탁 앞에서 부끄럼과 비웃음이 두려워 노래하지 못했더라면,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하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또 하루 멀어져간다.

멀어져가는 하루 앞에서 뭐 하나라도 더 시도해보자.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 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 젖은 두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허리가 뻐근하고 머리가 띵할 정도로 늦게 일어나는 날이 있다. 새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자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분명 전날엔 계획이 있었다. 계획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하루를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자괴감이 엄습한다. 잠을 좀 더 자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잊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면 자책감이 한층 더 많이 몰려올 것을 안다. 그런 날이면 사람이기보다는 마치 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웹툰 우리가 바라는 우리(우바우)웹툰 우리가 바라는 우리(우바우)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끔찍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프란츠 카프카 선생도 이런 아침에 소설 '변신'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외판원으로 일하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 당한다. 은퇴한 부모님과 어린 여동생을 부양하고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성실히 일해 왔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에도 못 나가는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걱정하고 슬퍼하던 가족들은 슬슬 그를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점차 그가 그레고르가 맞는지 의심하고 배척한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벌레 그레고르는 자신의 몸에 익숙해진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고, 벽이나 천장에 매달려 있기를 좋아하게 된다. 차라리 그가 집 밖으로 나가 숲 속에서 벌레의 삶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어차피 가족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다시 취직했고 그레고르가 가족을 부양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은근히,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나가길 바라고 있다.


영화 '돌연변이'는 그 비슷한 생각을 엔딩으로 삼는다. 제약회사의 생동성 시험에 참여했다가 생선 인간이 되어버린 박구의 상황은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와 비슷하다. 그리고 박구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인간의 세상을 등지고 바다로 간다. 인간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박사의 제안도 뒤로 한 채 그 넓은 바다로 헤엄쳐나간다. 어찌 보면 그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근데 이게 뒷맛이 계속 찜찜하다.



영화 돌연변이영화 돌연변이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한다. 너답게 살라고 한다. 근데 그게 벌레답게, 혹은 생선답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 같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인간답게 사는 것을 포기해선 안 되는 것 같다. 인간성은 주어진 것이다. 누군가 빼앗을 수 없으며, 스스로 팽개칠 수도 없다. 그러나 요즘은 스스로 인간성을 던져버리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인간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우린 나 자신의 인성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인성까지 챙겨줘야 하는 세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레테의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고개를 옆으로 약간 기울이고, 감상에 젖은 듯이 슬픈 표정으로 악보를 눈으로 따라갔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나갔다. 그리고 혹시나 그레테의 시선과 마주치기를 기대하면서, 고개를 마루 위에 바싹 붙이다시피 하며 수그렸다. "이처럼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


그레고르도 박구도 결국 세상에서 잊힌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스스로가 벌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으로 되돌아가길 바랐다. 방에 걸린 그림을 지키고 싶어 했고, 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고 싶어 했다. 인간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구는 생선으로 살았지만, 그레고르는 인간으로 죽었다.


아아, 말테야. 우리는 그냥저냥 사라져 간다. 내 생각에는 모두들 너무 정신이 산만하고 바빠서, 우리가 사라질 때에도 별로 주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마치 별똥별 하나가 떨어져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소원을 비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너는 소원 비는 것을 잊지 마라, 말테야. 사람은 소원을 포기하면 안 된다.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고 믿지는 않지만, 평생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그 성취를 기다릴 수도 없는 그런 소원들도 있단다. <말테의 수기>



 

변신
국내도서
저자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 김시오역
출판 : 브라운힐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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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라자르 역, 모네, 네이버생 라자르 역, 모네, 네이버




(시인의 산문) 

최승자


내가 발표했던 한 詩의 시작 메모이다. 


나는 잿빛으로 삭았고 

시간과 세계는 무한 잿빛으로 가라앉았고 

그래서 나는 辰辰이 cafe에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그러나 辰辰이 cafe의 그 무한 잿빛 창 너머로,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미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곰삭을 대로 곰삭은 잿빛인, 

그러나 동시에 아아주 가끔씩은, 동트기 아주 전에 

새벽하늘을 물들이는 서푸른 빛과도 같은 세계를. 

심원한 남색으로 가라앉고 있는 한 풍경 


세계가 삼(三) 겹으로 시리다 


그냥 뜬금없이 다니카와 슌타로의 「슬픔」이라는 

詩를 인용해보자. 


저 파란 하늘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근처에 

무엇인가 소중한 물건을 

나는 잊어버리고 온 모양이다 


투명한 과거의 정거장에서 

유실물계 앞에 섰었더니 

나는 도리어 더 슬퍼지고 말았다.


辰辰이라는 한자는 뭐라고 읽어야 할까?


나는 '진진'이 카페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나는 '신신'이 카페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둘다 썩 내키지 않는 맛이다. 훈의 음가를 써볼까.


나는 '별별'이 카페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나는 '때때'이 카페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일본어나 중국어음을 써볼까.


나는 '싱싱'이 카페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나는 '첸첸'이 카페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왠지 중국어음이 맘에 든다.



별 진, 때 신, 네이버 한자사전별 진, 때 신, 네이버 한자사전








서 참의 이놈. 날 은근히 무시했것다. 내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 난 집을 살 테다. 네깟놈이 천생 가쾌지 별거냐.


보여줄 테다. 복수할 테다. 너보다 난 사람이란 걸 증명할 테다.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란 걸 알려줄 테다. 날 무시한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줄 테다. 오기를 부린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이를 갈고 담을 씹으며 나를 비웃은 이들에게 한 방 날려주고 보일 미소를 연습한다.


꼭 상자를 찾겠다며 눈을 희번덕이는 형돈이 형만의 이야기일까. 안경다리 고칠 값은 없지만 집을 살 예정인 안 초시만 그렇게 생각할까. 언젠가 연 25만 불 이상의 사장님이 될 테니 부자 증세는 안 된다는 배관공 조님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


내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하며 살고 있나. 하루하루 고통을 무릅쓰고 실패를 이겨낸 후에 만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그 끝에서 만난 상자가 우리를 파멸시킬 걸 알면서도, '쥑이는' 손맛을 한 번 보기 위해 열어야만 한다면.






참의는 우선 미닫이를 닫고 눈을 부비고 초시를 들여다보았다. 안 초시는 벌써 아니요, 안 초시의 시체일 뿐이었다. 방 안을 둘러보니 무슨 약병 하나가 굴러져 있었다.





복덕방

저자
이태준 지음
출판사
종합출판범우(BW범우) | 2012-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국 단편문학의 대가, 비경향문학이 낳은 가장 출중한 작가 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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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 초인시대, TvN


혼밥(혼자 먹는 밥)이란 말이 새로 생겼나 보다. TV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MBC 다큐스페셜-지금 혼밥하십니까?'에서 다루더니 '나 혼자 산다'나 '식샤를 합시다'를 통해 종종 만난다. '초인시대'의 유병재는 화장실에서 혼밥을 한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었다. 누군가를 만나 식사할 시간이 없다. 약속 잡기도 귀찮다. 개인화로 인해 간섭받는 걸 싫어한다. 어떤 분들은 혼밥의 원인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혼밥족의 건강을 염려해 주기도 한다. 고맙기도 해라!


YTN science


혼자 먹는 밥에 입문한 지가 좀 되었다. 고등학생 때까지야 그런 기회가 없었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밥 약속 잡는 게 은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처음엔 테이크아웃 김밥을 받아 도서관 계단에서 몰래 먹기도 했다. 차츰 휴게실이나 복도 같은 곳으로 김밥 까먹는 장소가 대담해지더니, 이내 구내식당과 도서관 사이의 모든 벤치가 나의 뻔뻔한 식탁이 되었다. '길밥'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버린걸.


원래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 내 성향에 잘 맞는다. 전역 후로는 메뉴의 다양성을 추가해 식당과 배달음식과 일반음식점으로 범위를 넓혔다. 곧 밥 먹기의 영역을 넘어 영화 보기, 여행 가기, 콘서트, 뮤지컬까지 확장한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네. 소피아 뎀블링 선생은 어쩌다 시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놀기에 대한 선생의 말은 개운하다.


나는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걸 좋아하고, 딱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눈길들은 그냥 무시한다. 때문에 그런 눈길일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게 더 마땅하다. 끔찍한 첫 번째 데이트를 하고 있을 여자, 아내 손에 이끌려 극장에 온 남자, 수다스러운 친구의 중계방송을 계속 들어야 하는 여자. 하지만 내게는 캐러멜 캔디와 편안한 의자가 있고, 아무도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그저 혼자 가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잘 안다. 내게 순발력이나 적극성이 없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깨알같이 피드백 받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조용해." 이건 팀장님 말씀. "좀 더 활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형님 말씀. "타인의 이야기에 대해 의견 제시가 거의 없음" 이미지 트레이닝 과정에서 받은 얘기.


근데,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다. 내 성격은 사교성의 부재나 부족이 아니다. 일부로 적극적이고 신나고 활발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갖고 싶은 가치랑 잘 안 맞는다. 안 그래도 번잡한데, 꼭 나까지 나서서 시끄러워야 해? 난 좀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깊은 사고와 빠른 사고를 바꾸고 싶지 않다. 우리는 단지 행동이 느릴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도 느리다. 나의 뇌는 온갖 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모든 각도에서 살피기 때문에 반응하는 데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 나는 어떤 생각을 표현하기 전에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본 다음 결정한다.



희망적인 얘기로 글을 마무리해야지.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성적인 사람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니 속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거절당하거나 뒤통수 맞을까 걱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성적인 사람은 추가로, 딱히 좋거나 싫지 않은 사람들과 얘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성적인 사람이 당신과 얘기하고 있다면, 그는 당신을 좋아하는 거다. 꽤나 좋아할지도 모른다.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저자
소피아 뎀블링 지음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 2013-05-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미국 심리학전문저널 "사이콜로지투데이"의 인기 코너 ‘내성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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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게 재밌다. 그저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조차도 너무 재밌다. 하물며 화려한 색채와 볼거리가 있는 12화의 웹툰을 보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네팔의 문화이자 전설의 상징인 쿠마리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 '시타를 위하여'를 시험 전날 보았더니 재미가 백 배다.



쿠마리는 네팔의 여신 탈레주의 화신이다. 3~5세의 여자아이 중 선발되어 살아있는 신으로 받들어진다. 가족들은 헌금을 받아 부유해지고 본인은 섬김을 받는다. 왕조차 그의 앞에서 무릎 꿇고 존대하며 축복을 기도한다.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을 수 있다. 첫째로, 걸어 다녀서는 안 된다. 신의 몸은 성스럽기에 그 발이 닿은 땅은 부정을 탄다. 쿠마리는 가마에 태워지거나 남에게 안겨서 이동한다. 둘째로, 감정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신에게는 감정이 없다. 쿠마리가 웃거나 우는 것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상징한다. 셋째로, 사원 안에 격리된다. 신은 사사로이 행차하지 않는다. 쿠마리는 축제 기간 또는 정해진 날에만 외부로 나가며 공연한 대화를 하지도 못한다.


신으로 숭배받는 쿠마리의 소망은 무얼까. 만나보지 못하니 다만 상상할 뿐이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걷고 뛰어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울거나 웃으며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을지는 않을까?



인간은 신을 한계 짓는다. 신의 속성을 분류하고 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 규정된 속성을 벗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신의 이름을 붙여 해결한다. 신이 자꾸 늘어난다. 양태론이나 삼위일체론으로 풀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뭔가 늘어난다. 특히, 일본의 신토가 그렇다


예를 들자면, 야훼는 완전하고 선하다는 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는 자연에 존재하는 불완전함과 악함을 설명할 수 없다. 악함을 포기하면 완전하지 못한 신이며, 완전함을 포기하면 때론 선하고 때론 악한 신이 된다. 자기 속성이 자기모순이다.


불완전함과 악한 속성을 분류하고 따로 떼어 데미우르고스라는 반(半)신에게 붓자. 아, 이러면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빠지니까 위험한가. 그렇다면 선함과 악함,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모두 가진 새로운 신을 상상한다. 그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결론이 아브락사스를 믿자는 건 아니고, 신은 신일 뿐이다는 말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 속성을 상상하고 규정하고 한계 짓지 말자. 우리 신은 제사를 싫어하니까 너랑 못놀아. 우리 신은 우상을 싫어하니까 네 신상을 좀 부숴야겠어. 우리 신은 성실하니까 너도 검소하고 일중독이도록 해. 우리 신은 동성애를 싫어하니까 걔들은 인간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말자. 좀 그러지 좀 말자. 


그냥 진실한 눈으로 상대를 보고, 사랑하며 살자. 색안경 없이 좀 살자.




뱀발. 네 신, 내 신 따지지말고 사이즈 맞으면 함께 신자.






이 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서 이 드라마는 12화 동안 달려온 게 아닐까.


억울한 누명으로 대중에게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힌 출연자는 자신의 하차를 예상한다. 앞으로 스케쥴 없을 거라며 매니저는 휴가를 보낸다. 혼자가 된 방에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잠든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상황을 이렇게 망쳐버린 건 오로지 나의 잘못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그때 좀 더 명확히 말했더라면, 그때 실수를 준비했더라면, 실현되지 못한 만약에 만약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나조차도 싫어하는 이런 못난 나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


깜깜한 절망과 혼자 싸우고 있을 때, 나를 끌어주는 것은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다. 전능한 초월자나 광야의 초인이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옆에 같이 있었을 뿐이지만, 어느새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나를 일으킨다.


그러니까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는 건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로 무서운 건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고 떠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이 나한테 화내는 건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한테 실망하고 화내면 그게 진짜 무서운 거 아니냐"




*같이 듣는 노래 "커피소년;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프로듀사 OST)







당당도서관 7화, 다음 만화속세상


작년 6월에 만난 곽인근 작가.

대사도 해설도 적지만 캐릭터의 마음을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심리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스토리를 만든다.


한창 재밌게 보던 그때, '멍텅구리배'라는 단어에 푹 찔렸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괜찮다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포켓몬 스티커 모으듯이, 내일로 기차역 도장 찍듯이 갖추며 휩쓸려 살았다.


아마도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 좀 멍청한 배이긴 하지만, 내 배는 내가 챙겨야 하니깐.



뱀 발.

악마의 텔링텔링 열매를 먹고 그린 당당도서관에서

가장 멋지고 최고였던 심리묘사는 건널목 장면이다.




당당도서관 13화, 다음 만화속세상





별이 빛나는 밤, 위키백과




난류(turbulent flow)는 층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무질서한 유체의 흐름을 말한다.

순간의 인상을 그린 고흐 양반에게 하늘은 무질서한 세계였을까?


관로를 지나는 유체는 레이놀즈수 2300을 임계로 층류와 난류를 구분한다.

레이놀즈수는 유체의 속도, 관로의 크기에 비례하고 유체의 점성에 반비례한다.

유체 흐름의 비선형성이 적은 층류는 공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장비는 대부분 난류 흐름이다. 제어가 안 된다.


층류로 강제하기 위해 작은 관로와 느린 속도를 사용한다면

느려터진 장비의 움직임에 사장님들 마음이 답답해 터져버리겠지.


세상은 느린 게 싫은가보다. 기다려주지 않고 답답해한다.

차곡차곡 선입선출하는 게 아니라, 뒷사람과 앞사람이 뒤엉켜 소용돌이친다.

그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같이 뛰어나서야 할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낙오하지 않기 위해.


그건 좀 짜증 나. 다른 것에 휩쓸리지 않는 나의 흐름을 만들면 좋겠다.

주류와 따로 떨어진 vortex 흐름처럼...

아, 그게 낙오하는 거랑 똑같은 건가. 그렇다면 자발적 낙오자인 정도로 치자.



뱀 발. 고흐 양반이 사랑한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던데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http://www.metmuseum.org



난류의 시각화, 위키백과






I'm lying on the moon

My dear, I'll be there soon

It's quiet and starry place

Time's we're swallowed up

In space we're here a million miles away


There's things I wish I knew

There's no thing I'd keep from you

It's a dark and shiny place

But with you my dear

I'm safe and we're a million miles away




사람과 프로그램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아퀴나스 선생은 "To love is to wish good to someone"*이라 했던데,

음... 이 사람과 이 프로그램은 그렇게 사랑하는 것 아닐까?



반대로, 사람과 프로그램이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


프로그램은 실체가 없으니까?

그들은 주인과 소유물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은 프로그램이 가지는 논리와 달라서?

서로가 다른 시간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므로?



인류는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내곤 한다. 기술의 한계는 '필요'에 있다.

AI는 언젠가 완성될 것이다. 아마 필요할 것 같거든,

그전까지는 AI와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해놔야지.



*뱀발: STh I-II, 26, 4




그녀 (2014)

Her 
8.3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루니 마라, 에이미 아담스, 올리비아 와일드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26 분 | 2014-05-22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내가 네 엄마고 네가 내 자식일 테니까.

 

 

국제시장이 아빠의 이야기라면, 수상한 그녀는 엄마의 이야기다.

광부로 독일에 파견 갔다가 뼛가루가 되어 돌아온 남편

남겨진 아이를 안고 시장통에서 일하고

아픈 아이를 붙들어 제발 아프지 말라 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덕수 할배는 자기의 꿈이 선장이었다고 말한다.

말순 할매는 가수가 되는 좋은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비록 꿈을 이루지도 못하였으며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이만하면 잘살았고, 다시 다름없이 살겠다 말한다.

 

아버지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는데

잃어버린 이들은 자식으로 가족으로 다시 피어난다.

시간은 무심히 지나지만, 기억은 반복된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엄마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다.

 

그의 유년시절, 꽃다운 소녀 시절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네가 아장아장 걸어 다녔을 때의
새댁 엄마의 모습도 기억할 길이 없다.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수상한 그녀 (2014)

Miss Granny 
9
감독
황동혁
출연
심은경, 나문희, 박인환, 성동일, 이진욱
정보
코미디, 드라마 | 한국 | 124 분 | 2014-01-22

 


 


김정호 Vol.3 (하얀 나비 / 인생) (LP복각판)

아티스트
김정호
타이틀곡
-
발매
1983.03.10
앨범듣기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을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간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선배 마이너스 백 점! - 아이고 아쉽다.

선배 땡 탈락! - 아이고 더 아쉽네.

선배 플러스 백 점! - 아이고 의미 없다.

   

개그콘서트, 선배선배

 

 

개그콘서트 명훈이 형은 매번 의미 없다. 뭐라도 의미 있을 법한데, 그저 또 하! 또 하루 지나갈 뿐이다. 관심이 없어 의미 없다. 의미가 없으니 의욕도 없고 대충 한 끼 때우는 소리만 한다. 저 형 이야기가 왠지 요즘의 내 맘과 같다. 몰려오는 일들 속에 내가 뭐 하는지 모르겠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벌써 2015년이다. 대학원은 기말고사로 학기를 마무리했다. 회사에서 일 년간 설계해 온 장비가 출시했다. 열심히 했는데, 지나고 보니 별 감흥이 없다. 하, 아이고 의미 없다.

 

우리는 언젠가는 어차피 죽는다. 한 사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한다면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인생에 의미란 없지 않은가?

 

 

 

달라지는 게 없으니 의미가 없다. 열심히 산다고 안 죽는 게 아니다. 열심히 한다고 세상이 나아지는 게 아니다. 그냥 똑같다.

 

명훈이 형이 백 점 받는다고 수지랑 사귈 게 아니다. 백 점짜리 조언해준다고 수지가 야구부 선배랑 사귀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다. 그냥 똑같다.

 

2014년 나는 어떤 의미를 만들었는가? 대학원과 일을 병행하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대학원에 등록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시험은 여전히 벼락치기였고 숙제는 하루 전에야 허겁지겁 제출만 했다. 늦기도 했다. 수업 후엔 술집에서 별 의미 없는 수다와 개똥철학만 만들다 말았다. 일은 꾸준히 했지만, 전문성을 기르진 못했다. 나 하나 열심히 일한다고 회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며, 나 하나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좋지만, 그냥 똑같다. 꿈꾸기 위한 블로그는 여지까지 유령 블로그나 다름없다. 인터넷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회의도 든다. 글이 나아지지도 않다. 이전과 다름없다. 닥쳐오는 숙제와 몰린 일들, 써야 할 글들을 해내기에는 의욕이 없다.

 

의미를 잃으면 실존적인 공허를 만난다. 사실 '실존적'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지금처럼 공부도 일도 연애도 하고 싶지 않은 무의욕의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 공허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이 공허를 없애줄 재미난 것을 기다린다. 스펙터클이 필요하다.

 

성인 사회의 경우는 공허한 자기를 마비시키기 위하여 '돈', '폭력', '권력'의 세계에서 자극을 찾으려고 한다. 이와 같은 도피행각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며 삶의 목표와 이유를 상실한 채 세파에 자신을 내던진 행동으로서, 이는 일시적으로 공허한 자기를 마비시켜 주는 효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프랑클 양반은 본문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을 소개한다. 의미는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부터의 부름이다. 의미는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가치를 찾기 위한 질문과 연습이 필요하다.

 

어느 날, 나이가 지긋한 한 개업의가 억울 증세에 시달리다가 프랑클의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2년 전에 처와 사별하여 그 깊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아직 추스르지 못한 상태였다. 프랑클은 다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선생님 만약 선생님이 먼저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니까 부인이 선생님보다 장수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 의사는 말하였다.
"물론 처는 매우 괴로워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프랑클은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부인의 죽음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 괴로움에서 부인을 구제한 것은 결국 선생님인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부인을 잃은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부인이 겪을지도 모를 괴로움을 선생님이 대신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노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감사의 뜻으로 프랑클의 손을 잡고 나서 나갔다고 한다.

 

리프레이밍이다. 부인과의 사별로 인해 공허 속에 빠진 노 의사는 이 시련의 의미에 관해 묻는다. 프랑클 양반은 그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고통을 잊는 방법을 소개하지도, 아프니까 노년이라며 설픈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담담히 이 시련이 지금 당신에게 의미하는 바를 어떻게 느끼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그 답이 스스로 노 의사에게 다가온다.

 

모두에게 완자가, 네이버웹툰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의 내용이다. 완자 가족은 소방서 옆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사이렌에 시달린다. 다급한 통화 내용과 소음이 모두를 무섭게 한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는 한 마디로 가족의 생각을 바꾼다. 그 후로 사이렌이 고통스럽지 않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크게 변하고 깨달아야 의미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달리하는 것이다. 믿는 것이다. 의미는 새로운 눈을 구하는 자에게 온다. 우리는 어쨌거나 무언가를 믿고 산다. 적어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진 않을 거라고 믿고 산다.

 

그렇게 나에게 닥친 일들을 믿자. 내가 만들어 내는 것과 경험하는 것과 그 안에서 내가 갖는 자세를 믿자. 그리고 그것들이 가진 가치를 믿자. 그러면 그들이 의미 있는 내용으로 와서 내 삶을 채워줄 거다.

 

자기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자기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와 시간 그 자체는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장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반드시 의미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짧은 인생으로 끝났다 하여도 장수했던 사람보다도 훨씬 의미 있는 인생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자서전을 평가하는 기준은 페이지 수가 아니라 그 자서전에 담겨있는 내용에 있다.

 

 

뱀발: 명훈이 형은 매번 나를 웃게하는 의미 있는 사람이당.

 


의미없는 인생은 없다

저자
정인석 지음
출판사
학지사 | 2013-02-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프랑클 심리학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추구와 그 실현에 대한 ...
가격비교

 

 

 

 

 

 

 

 

 

이성과 감정은 일치하는 날도 많고 따로 가는 날도 많다.


저런 꼴을 하고 있는데, 내 가슴이 뛰겠냐 하는 머리와

그런 윤솔이의 꼴을 보고도 두근두근 뛰는 심장의 사이에서

이성은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정맥 같은 소리가 탄생한다.


솔아 오빠 이상해. 나, 나, 부정맥인가봐.



*뱀발. 부정맥 같은 소리. 슬기님 신인상 받는 소리.

 


연애의 발견

정보
KBS2 | 월, 화 22시 00분 | 2014-08-18 ~ 2014-10-07
출연
정유미, 에릭, 성준, 윤진이, 윤현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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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감자먹는 사람들, 네이버

 

 

감자 먹는 사람들 - 삽질 소리

정진규

 

우리들도 그렇게 둘러앉아

삶은 감자를 먹던 때가 있었다

불빛 흐린

언제나 불빛 흐린

저녁 식탁이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셋째 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들처럼

마디 굵은 우리 식구들의 손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 소리들을 꿈속에서도 들었다

누구나 삽질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조금 창문을 두드렸다

제일 부드러웠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늘은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농부를 그린 그림이지만

나는 탄광 생각을 한다.

 

유재석이 차승원이

황정민이 오달수가

 

새까매진 하루를 씻으러

목욕탕엘 가면 좋겠다.

 

 

 

국제시장, 네이버영화

 

 

개그를 다큐로 받으면 가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국제시장 (2014)

6.8
감독
윤제균
출연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 장영남
정보
드라마 | 한국 | 126 분 | 2014-12-17

 

 

 

9월 11일 MBC FM4U에는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으로 춤추는 명수 옹과 먹는 소리를 찾는 바보형, 그리고 이중인격 진행의 하하까지 하루의 이야기가 되었다. 무한도전은 하루를 꽉 채웠다. 400회 가까이 매주의 콘텐츠를 만들어 오고 있다.

 

그에 반해, 한동안 포스팅을 못 썼다. 바쁘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다. 큰 이유는 글쓰기가 좀 어렵다. 별생각 없이 쓰면 쓰겠는데, 잘 쓰려고 하니 영 진행할 수가 없다. 쉽게 손을 댈 수가 없다. 조금 더 좋은 글, 좀 더 완성된 글을 쓰기란 허황하다. 키보드 앞에 손가락만 바들바들 떨 뿐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정형돈은 동경해온 음악캠프를 진행했다. 장비를 배우고 대본을 외웠다. 얼마나 떨고, 심장 쫄리고, 부담되는지 방송을 통해 본다. 동경한다는 것은 도전할 기회를 만든다. 그러나 동경하는 것이 도전을 완성해주지 않는다. 글쓰기를 동경해서 결국 블로그까지 개설했다. 이제는 꾸준히 연습하고 실행해야 한다.

 

New post를 누르고 나면 항상 막막하다. 그렇지만 매일 글을 쓰자. 라디오데이 편성표처럼 꽉 찬 블로그를 만들어 가자.

 

 

 

 


무한도전

정보
MBC | 토 18시 25분 | 2006-05-06 ~
출연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소개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다. 늘 리얼한 모습으로 끝없이 도전을 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해...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걸"

 

 

한창의 물결을 슬쩍 지나친 늦은 애도

팬이라 하긴 민망하지만.. 참 아쉽습니다.

 

내 첫 합주곡이었던 '그대에게'

건반 치기 어렵다고 욕한거 미안해요.

다 제 손가락이 못난 탓이어요.

 

덕분에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곡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대에게

아티스트
신해철
앨범명
Myself
발매
1991.04.05
배경음악다운받기듣기

[가사]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리는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걸
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잊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좋아라 보았던 응답하라 1997에는 형님 제사에 카스텔라 빵을 올리는 동생의 모습이 나온다. 빵과 얽힌 형님의 기억을 추억할 수 있으니 좋다. 근데 제사상에 카스텔라를 올려도 되는 것인가?

 

제사상의 예법은 유교의 것을 따른다. 그리고 유교는 굉장히 고루한 취급을 받고 있다. 경직된 관료사회, 수직적인 조직문화, 단절된 가부장제 심지어 명절을 고통스럽게 하는 제사까지 한국 사회의 어려움인 허례허식의 원흉으로 꼽히는 유교이다. 이상하다. 공자가 말했던 것은 이런 예법을 꼭 지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는 것 아니었던가?

 

응답하라 1997 15화

 

공자가 말하였다.

"원래는 삼실로 된 면류관이 예법에 맞지만 지금은 모두들 명주실을 사용한다.

그것은 간편하기 때문이니 나도 오늘날의 다중들을 따르겠다.

 

당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법에 맞지만 지금은 당 위에서 절을 한다.

그것은 교만해진 때문이니 비록 오늘날의 다중들과 어긋나더라도

나는 당 아래에서 절하는 예법을 따르겠다.

<논어, 자한편>

 

 

생물의 첫 번째 특징을 '항상성 유지'라고 말한다. 열에 녹고 바람에 부수어지는 돌멩이와 달리, 환경이 변하더라도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기전을 바꿀 수 있는 성질이다. 예를 들면, 생물은 기온이 오르더라도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물에 빠진 시체와 달리 물에 몸이 붓지 않도록 유지한다.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근육을 움직이고 신경을 조절해야만 살아낼 수 있다.

 

공자가 말했던 '인예'는 이렇게 유지되어야 할 상태이다. 그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예법은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방법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더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다. 좀 세련된 이론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몇 달이면 모두가 교체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전과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예법의 형식이 변하더라도 '예'가 가진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국조오례의 대부사서인 진설도

 

예법을 무시하고 편의를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예기, 주자가례, 그리고 위의 진설도가 있는 국조오례의까지 유교의 예법은 꾸준히 서적으로 편찬되고 이어져 왔다. 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진심'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대를 좋아한다고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예법은 그 좋다고 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보편타당한 방식들을 모은 것이다. 서로 간에 공감되는 수준에 있기에 오해 없이 왜곡 없이 표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진심보다 표현이 과하면 허식 또는 가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표현할 지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작년부터는 요일을 정해두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있다. 전화 자체는 표현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 표현으로 인해 예전보다 많이 관계가 매끄럽고 편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이 전화에 맞는 진심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겠다. 카스텔라 빵처럼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논어(풀어쓴 고전1)

저자
조관희 지음
출판사
청아출판사 | 2014-02-19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논어》는 공자 자신의 말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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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아무리 외치더라도,

어딘가 더 행복한 곳

언젠가 더 행복한 때를 꿈꾸는 것을..

 

 

 

 

 


샤이닝

아티스트
자우림
앨범명
JAURIM A/W COLLECTION
발매
2009.11.17
배경음악다운받기듣기

[가사]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 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 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돌에 맞아 죽은 스테판 집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 사도, 그리고 못 판을 걸었던 주기철 목사. 종교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순교자들은 잊히지 않는 거룩한 사람으로 신앙인의 마음속에 남는다. 자신의 목숨보다 신념과 신앙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이들인 만큼 존경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은 30냥에 신을 팔았던 최초의 배교자 유다는 사랑받을 수 없고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가치 없는 인생인가?

 

 

 

유다의 입맞춤 - 지오토 디 본도네

 

 

소설은 한 번도 조명되지 못해본 배교자의 이야기이다. 포르투갈의 세 신부는 그들의 스승을 찾아 일본으로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그들의 스승은 일본에서 20년간 선교를 하다가 배교를 했다는 소문만 남긴 채 연락이 두절되었다. 스승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본에 도달한 신부는 농민들의 도움으로 관리들로부터 숨어 선교를 하나, 결국 배교자 기치지로의 밀고로 체포되고 만다.

 

일본인 신도 기치지로는 유다와 같은 인물이다. 신앙을 가졌으나, 그 본성의 나약함으로 인해 배교와 회심을 반복한다. 관리의 고문과 협박에 배교를 하고, 그를 빌미로 신도들을 체포하거나 회유하는 일에 동원당한다. 비열하고 악랄한 이미지의 기치지로는 소설의 진행에 따라 점차 불쌍하고 괴로운 영혼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신부를 팔아넘긴 후, 기치지로는 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며 울먹인다.

 

형과 누이가 화형에 처해지던 날, 형장을 둘러싼 군중 틈에서 이 겁쟁이의 얼굴을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들개처럼 진흙투성이가 된 그는 형과 누이의 순교를 보는 일조차 감당할 수 없어서 곧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기치지로는 매 맞은 개처럼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두드립니다. 성격 그 자체만으로는 참으로 선량합니다만, 선천적으로 겁 많은 이 남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용기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 용서해주세요."

기치지로는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며 외쳤습니다.

"나는 약해요. 나는 모키치나 이치소우처럼 강한 자는 될 수 없어요."

사나이들이 팔로 제 몸을 우악스럽게 잡더니 땅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몇 닢의 작은 은전을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기치지로의 코앞에 경멸하듯이 내던졌습니다.

 

 

체포된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문과 형벌이 아니었다. 관리들은 신부를 고문하지 않았다. 고통받고 처형당하는 것은 다른 농민 신도들의 몫이다. 신부가 배교하지 않으면 농민들이 밧줄에 묶여 바다에 빠졌고, 불에 태워졌고, 그리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몇 날 며칠이고 받아야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온 일본이건만, 생각과 달리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신부는 혼란을 겪는다. 성화를 밟는 것은 형식일 뿐이라고 하는 일본의 관리 이노우에, 배교자가 되어 나타난 스승 또한 혼란을 더한다. 혼란하다, 혼란해. 그렇게 신부 역시 성화를 밟게 된다.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성인전에 쓰인 그런 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봐라, 봐. 너희 때문에 말야, 저렇게 피가 흐른다. 농민들의 피가 또 땅바닥에 흐른단 말이다."

(...)조소가 뒤섞인 통역의 얼굴에 이노우에의 통통하고 혈색 좋은 얼굴이 겹쳐졌다.

"너는 그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너 때문에 저 사람들이 죽어 간단 말이야."

 

발이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했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 멀리서 닭이 울었다.

 

 

배교자 바오로, 오카다 산에몬이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신부는 자신이나 유다나, 심지어 기치지로나 다를 바 없다고 느낀 것 같다. 다시 찾아와 고해를 구하는 기치지로를 위로하며,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는 거요.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소."

신부는 문 쪽을 향해 빨리 말했다.

"이 나라에 이미 당신의 고해를 들을 신부가 없다면, 내가 기도의 말씀을 외우겠소. 모든 고해의 마지막에 올리는 기도를... 안심하고 가시오."

 

 

순교는 거룩하고 배교는 비겁하다. 상황을 단순화시키면 칭송될 이와 비난받을 이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누구나 자신은 배교하는 이가 아닌 순교하는 이가 될 거라 믿는다. 어쩌면 순교하는 자신에게 하늘의 빛이 내리는 멋진 장면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은 그런 오만에 대해 푹 찔러온다. 너라고 네가 경멸하는 그 이들과 다른 사람일 것 같으냐고.

 

순교자를 존경할 수는 있으나 배교자를 경멸할 권리는 없다. 그들을 경멸할 수 있는지는 오직 재판장인 신의 몫이다. 그리고 신께서는 닭울음 소리와 함께 세 번이나 배신한 배교자, 베드로 사도마저 여전히 사랑하셨다.

 

 


침묵

저자
엔도 슈사쿠 지음
출판사
홍성사 | 2005-07-29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일본이 자랑하는 현대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대표 작품. 배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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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철거합니다"

슝 퍽 퍼벙

 

 

주인공 아서 덴트의 집이 철거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법에 따라 고지한대로 철거하겠다고 나서는 불도저 앞에 주인공은 배를 깔고 눕는다. "집을 부수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 ... 밟고 지나가진 않지만 집은 부서지고 주인은 쫓겨난다.

 

곧이어 외계로부터 고지가 온다. 초은하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은하법에 따라 지구를 철거하겠다는 외계인 대장의 등장. 지구인들은 배를 깔고 눕기도 전에 한순간에 증발해버린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에 따랐는지에 책임 소재를 둔다. 절차적 당위를 갖고 있다면 책임을 따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절차적 당위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집을 한순간에 밀어버리는 것이, 60억 인구의 지구를 한순간에 증발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Be skeptical.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의심해야한다. 과정에 대한 책임이 아닌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그 유명한 아이히만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뱀발1: 그나저나, 저 언니 썸머 아냐?

*뱀발2: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05)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8
감독
가스 제닝스
출연
마틴 프리먼, 조이 데이셔넬, 샘 록웰, 모스 데프, 스티븐 프라이
정보
코미디, SF, 어드벤처 | 영국, 미국 | 110 분 | 200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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