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What's your favorite movie?


죽은 시인의 사회죽은 시인의 사회, 출처: 네이버 영화



   아들의 질문


   옛날엔 극장에서 영화를 봤나요? 극장은 많이 있었나요? 가격은 얼마나 했나요? 자주 보러 가셨나요? 저는 주로 컴퓨터에서 영화를 봅니다. 좋아하는 영화들은 여러 가지인데, <과속스캔들>, <잠수종과 나비>, <아이엠샘>, <매트릭스>, <오페라의 유령> 같은 것들이에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건 <죽은 시인의 사회>에요. 중학교 졸업할 즈음에 본 것 같은데, "끊임없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 책상 위에 서는 거야"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여러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정해진 길만 따르는 낙타 같은 삶은 슬프단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떤 영화가 가장 좋았나요? 그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아버지의 답


   옛날...! 그러니까 일천구백 60년대에는 연산역 광장에서 야외스크린 쳐놓고 낮에 지프차에 확성기 달고 이윤복 어린이의 일기를 소재로 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상영한다고 많이들 구경 오시라고 "공짜지 머......" 저녁 먹고 친구들하고 같이 가서 구경했던 게 처음 접했던 영화였다. 흑백인데 무성은 아니었다. 영화 속의 사람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이 참 신기했지. 내용은 관심이 없고 그저 영화의 신기함에만 몰두했지.


   그리고 초딩2학년 그러니까 1965년 목조건물창고에서 가끔씩 영화상영을 했지 입장료가 있었는데 얼마였는지 몰라 왜냐하면 친구 만일이하고 개구멍 질을 해서 들어갔으니까. 몇 번은 아버지의 삼촌께서 돈은 내주셨고, 그래서 본 것이 총천연색 씨네마 스코프 <홍길동> 신영균이라는 배우가 주연, 그리고 <최후전선 백팔십리> 6.25동란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로 주연이 여러 명이었던거 같아 김희갑이라는 배우가 매우 웃겼던 기억이 난다. 기록영화로는 프로레스링의 김일, 복싱의 김기수 이런 것도 보았다. 아주 신났단다. 그때 TV가 없었다. 그런 게 있다고는 들었는데 실제로 본건 1969년도 아폴로 달착륙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50년 전 얘기를 하고 있었구나!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단체관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1970년대 군 소재지에는 극장이 두어 곳 정도는 있었지. 논산에는 논산극장과 군민관 두 군데가 상시 상영하고 있었지. 한 달에 한 번꼴로 단체관람이 싸게 아마 반값?(경제감각이 없어서 금액은 기억이 안 남)으로 그대신 다른 때 극장 가서 걸리면 유기정학 1주일에 쳐해졌단다. 아버지는 정학을 당한 적은 없다. 착해서 안 간 게 아니라 돈이 없어 못 간단다. ㅎㅎ. 중학교 때 기억나는 영화 외국영화 <천지창조>, 기록영화 <동물각하>, 서부영화 <최후의 7인> 한국영화는 <성웅 이순신>, <춘향전>을 보았던 기억이 나고 <동물각하>에서 거북이가 뒷다리로 마치 포크레인이 퍼내는 것처럼 모래를 파고 거기에 알 낳고 묻어두면 까만 새끼거북이 깨어나와 바다로 막 기어가는데 새(갈매기인지 독수리인지 모름)가 채가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열심히 기어가서 바다에 안기는 새끼거북도 꽤 있었던 거 같았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로 걸리면 정학! 한 달에 한 번은 단체 관람. 그런데 단체관람 날은 수업이 일찍 끝나지. 그러나 영화 보러 간 거보다 친구들과 짜장면 먹으러 중국음식점 간 게 더 많았다. 아카데미극장, 대전극장, 시민관이 개봉관이었지. 그래도 기억나는 영화는 <에덴의 동쪽>, <정무문>. 한국영화는 정소녀의 <이름 모를 소녀> 강제동원 관람영화도 있었다. 박태준 씨가 포항제철 건설하는 거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제목이 <해벽>인가? 가물가물해. 비바람 파도 속에 방파제 쌓는 장면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그런 영화도 보았단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1983년도 <사운드 오브 뮤직> 1984년도 <터미네이터>를 끝으로 극장을 잊고 살다가 연전에 아들과 같이 보았던 <국제시장>이 제일 좋았다.



   적고 싶은 것


   어릴 적에 TV나 비디오로 영화를 접할 수 있어서 처음 봤던 영화가 뭔지는 기억할 수 없다. <나홀로 집에>, <로보캅>, <배트맨>이나 <사탄의 인형>, <폴리스 스토리> 같은 영화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언제 봤는지가 기억나는 건 선생님이 학교에서 틀어줬던 <매트릭스>였다. 그때는 그저 때려 부수고 총 쏘고 누워서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 재밌었던 것 같다. 그런데 머리가 굵고 나서 다시 보니 액션 이외에도 소름 돋게 잘 만든 영화였다.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 세계는 나중에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어린 애들에게 <매트릭스>를 보여준 선생님의 의도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뭘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지?


   영화관이란 곳을 가본 것은 좀 더 자란 뒤의 일이었다. 'CGV'나 '메가박스' 같은 전국적인 체인은 없었다. '주네스'니 '키노피아'니 하는 촌내음 나는 이름의 개별 멀티플렉스와 독립영화관이었는데, 그나마 쉽게 갈 일이 있진 않았다. 친구 생일 정도의 이벤트가 있어야 시내에서 맥도날드나 롯데리아를 먹고 영화관에 가고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다가 오는 사치를 부렸었다. 그즈음에 봤던 게 <살인의 추억>, <국화꽃 향기>,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왕의 남자> 같은 영화들이다. 그러고 보면 이때쯤 한국 영화가 꽤 재밌었고 천만 영화도 나오기 시작했었다.


   아버지의 때와 달리 나는 영화를 본다고 정학을 당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딱히 더 많은 영화를 본 것 같지는 않다. 남들이 재밌다고 하는 영화만 졸래졸래 따라가서 보고 나왔기 때문인가?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그런가?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자유로워진 사회가 됐다. 그런데 그 안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추억 돋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작 인상 깊었던 영화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국제시장>인걸로 하자. 사실 <국제시장>의 내용이 썩 훌륭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가족과 함께 봤으니 좋은 영화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영화를 보았는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그건 영화감독이 만들어줄 수 없는 오롯이 내 몫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까. 이번 여름엔 아버지가 좋아하게 될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아, <죽은 시인의 사회>가 8월에 재개봉한다고 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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