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명의 딸을 둔 부부가 여섯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가 아들일 확률은 얼마인가?"
독립시행에서 이전의 결과는 다음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정답은 1/2이 된다. 그러나 사람은 "왠지모르게 다음번에는.."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밤새 내리 잃기만 한 도박사가 다음 번에는 돈을 딸수 있을거라 믿는 '도박사의 오류'다. 이런 식의 근거없는 믿음은 자주 나타나곤 한다.
"의사 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래서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에서 해방될 것인지,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내가 물었다."1945년 2월에요."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그래, 꿈 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그가 내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3월 30일이래요"F는 희망에 차 있었고 꿈 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 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 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 31일 그는 죽었다. 사망의 직접적인 요인은 발진티푸스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는 성탄절부터 연초까지였다고 한다. 다음 해에는 이 끔찍한 생활이 끝날거라고 믿으며 버티던 사람들의 믿음이 깨지기 때문이다. 갖고 있던 믿음이 깨진만큼 더이상 버틸 힘이 남지 않는다. 본문에 등장한 F씨 또한 마찬가지다. 꿈속의 예언자가 말한 3월이 지나자 그는 발진티푸스에 의한 고열로 죽게된다. 믿음의 상실로 인해 병균을 막아낼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은 위험한 것일까? 그 상실감으로 사람이 죽을 정도라면 아주아주 위험한 작용인 것 같다. 희망에 가득 찬 믿음은 현실 감각을 잊게 만든다. "잘될거야! 할 수 있어!"라는 허황된 말이 마약처럼 작용한다. 사실 상 더 나아질 만한 행동은 하나도 취하지 않으면서 긍정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만든다. 어찌보면 꿈 따위 갖지 않는게 나을 수도 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무엇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와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이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꿈 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꿈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꿈에서 깬 다음 수용소 생활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꿈속의 환상과 현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프랭클 의사양반은 꿈과 현실의 괴리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한밤중에 엄청나게 행복한 꿈을 꾸는 이를 깨울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일어나면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될텐데, 굳이 벌써 깨운다고 나아질 것도 없지 않은가.
의사양반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내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 꿈이 확고했기에 틈틈히 서적을 내기 위한 원고를 작성했다. 원고를 빼앗기는 절망적인 상황 또한 이겨내고 다시 원고를 집필했다. 결국은 그의 꿈이 비참하고 위험한 수용소 생활을 이겨낼 힘이 되지 않았나.
"왜(why)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
어떤 꿈은 나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꿈은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건 꿈이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무슨 꿈을 꾸는지가 아닐까. 기왕이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한다. 조금 환상적인 꿈을 꽤나 현실적으로 꾸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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