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리쿠르팅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모교에 갔었다. 학생이 아닌 리쿠르터로서의 첫 방문은 낯설며 당황스러웠고, 무얼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별거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도,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꽤나 많았던 것 같은데, 사람이 너무 많이 오다보니 대인울렁증이 도지고 말았다. 역시 사람 많은 곳은 힘들어.

 

졸업한지 꽤나 지났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모교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아는 사람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건물과 시설은 변했더라도, 4년간을 보낸 그 분위기와 함께 지낸 사람들은 여전했다. 강의동, 도서관, 카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남은 친구들을 만나는 중에 편안함과 왠지 모를 아련함을 느꼈다. 올라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 몸담았던 곳인만큼 내 한구석에는 그 곳의 분위기가 새겨지지 않았을까. 나를 만든 곳이기에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생각하며, "청춘노릇"이란 책을 만났다. 안준희 대표는 사내복지로 유명한 핸드스튜디오의 대표이다. 재밌는 기업, 들어가고 싶은 좋은 기업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청년들을 위한 멘토로도 뜨고 있다. 대학 첫 OT의 사회자였던 분이었기에 왠지모를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이 아저씨는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안내원은 능숙한 동작으로 비치되어 있는 티베트의 관광지도를 한 장 건넸습니다. 지도를 받아 든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안내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이 지도에서 제가 어디에 있는지 표시해 줄 수 있나요?"

 

새로운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들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첫 질문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입니다.

 

 

오사카에 혼자 여행을 갔을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공항에서 받은 지도만으로 여행을 해보기로 했었다. 재밌는 여행 컨셉이었지만, 안내원에게 받은 지도를 펴고도 한참 동안이나 이동할 수 없었다. 그 지도에는 내가 있는 간사이 공항이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을 모르니 목적지에 어떻게 가야할 지 알 수 없었다. 공항은 오사카 도심에서 꽤나 떨어져 있어서 지도 뒷면의 소지도에 오사카 주변 교통과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비전)가 여행의 목적지와 같다면, 정체성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과 같다. 목적지에 대한 정보가 많고 적음과 관계 없이, 지금 나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한발짝도 이동할 수 없다.

 

 

아마도 한 번쯤은 자신의 진로와 선택 앞에서 심각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저를 찾아왔던 수많은 젊은 후배들 중에도 '어디로 가야 할까요', '무엇을 할까요'라는 내용으로 고민하는 청춘들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어떤 목적지를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할 뿐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는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았더군요. 예를 들어, 평생을 함께 살아갈 반려자를 선택하면서 어떤 사람이 좋은 반려자인지를 고민하는 청년은 보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고민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타고난 본성과 내가 속한 주변의 환경을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본성이란 잘 변하지 않는 것이지만, 나의 환경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속한 집단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환경이 되어주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책에는 '지켜보는 이가 없을 때, 지켜지는 가치가 진짜다.'라는 말이 나온다. 요즘 좋아라 하며 보는 루드비코의 만화일기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무얼 했나. 아침에 숙제 좀 깨작깨작하고 나서, 누워서 더 지니어스를 보고 잠들었다가,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회사일 좀 잠깐 깨작깨작 하다가 다시 누웠다.

 

옳고 바른 사람이길 원했건만.. 이거 뭐야 잉여잖아. 괜히 루드비코의 한 마디가 귓가를 울린다.

 

 

 

 

 

 


지겹지 않니 청춘 노릇

저자
안준희 지음
출판사
중앙북스 | 2013-09-0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청춘 여러분,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십니까?위로받고, 아파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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