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 초인시대, TvN
혼밥(혼자 먹는 밥)이란 말이 새로 생겼나 보다. TV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MBC 다큐스페셜-지금 혼밥하십니까?'에서 다루더니 '나 혼자 산다'나 '식샤를 합시다'를 통해 종종 만난다. '초인시대'의 유병재는 화장실에서 혼밥을 한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었다. 누군가를 만나 식사할 시간이 없다. 약속 잡기도 귀찮다. 개인화로 인해 간섭받는 걸 싫어한다. 어떤 분들은 혼밥의 원인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혼밥족의 건강을 염려해 주기도 한다. 고맙기도 해라!
YTN science
혼자 먹는 밥에 입문한 지가 좀 되었다. 고등학생 때까지야 그런 기회가 없었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밥 약속 잡는 게 은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처음엔 테이크아웃 김밥을 받아 도서관 계단에서 몰래 먹기도 했다. 차츰 휴게실이나 복도 같은 곳으로 김밥 까먹는 장소가 대담해지더니, 이내 구내식당과 도서관 사이의 모든 벤치가 나의 뻔뻔한 식탁이 되었다. '길밥'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버린걸.
원래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 내 성향에 잘 맞는다. 전역 후로는 메뉴의 다양성을 추가해 식당과 배달음식과 일반음식점으로 범위를 넓혔다. 곧 밥 먹기의 영역을 넘어 영화 보기, 여행 가기, 콘서트, 뮤지컬까지 확장한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네. 소피아 뎀블링 선생은 어쩌다 시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놀기에 대한 선생의 말은 개운하다.
나는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걸 좋아하고, 딱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눈길들은 그냥 무시한다. 때문에 그런 눈길일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게 더 마땅하다. 끔찍한 첫 번째 데이트를 하고 있을 여자, 아내 손에 이끌려 극장에 온 남자, 수다스러운 친구의 중계방송을 계속 들어야 하는 여자. 하지만 내게는 캐러멜 캔디와 편안한 의자가 있고, 아무도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그저 혼자 가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잘 안다. 내게 순발력이나 적극성이 없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깨알같이 피드백 받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조용해." 이건 팀장님 말씀. "좀 더 활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형님 말씀. "타인의 이야기에 대해 의견 제시가 거의 없음" 이미지 트레이닝 과정에서 받은 얘기.
근데,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다. 내 성격은 사교성의 부재나 부족이 아니다. 일부로 적극적이고 신나고 활발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갖고 싶은 가치랑 잘 안 맞는다. 안 그래도 번잡한데, 꼭 나까지 나서서 시끄러워야 해? 난 좀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깊은 사고와 빠른 사고를 바꾸고 싶지 않다. 우리는 단지 행동이 느릴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도 느리다. 나의 뇌는 온갖 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모든 각도에서 살피기 때문에 반응하는 데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 나는 어떤 생각을 표현하기 전에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본 다음 결정한다.
희망적인 얘기로 글을 마무리해야지.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성적인 사람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니 속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거절당하거나 뒤통수 맞을까 걱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성적인 사람은 추가로, 딱히 좋거나 싫지 않은 사람들과 얘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성적인 사람이 당신과 얘기하고 있다면, 그는 당신을 좋아하는 거다. 꽤나 좋아할지도 모른다.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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